NCT의 마크를 좋아라했었다. PMS였는지 계약종료가 발표된 주간에는 꽤나 울적했었다. 요즘에는 다시 마크의 옛날 영상들을 디즈니 영화 추억팔이하듯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마크의 다음 행보가 공개되기 전, 내 기억을 기억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길지 않을 때일 것 같아서 기록삼아 갤러리에 남은 사진 몇 개를 남겨보려고 한다.
17년에서 19년 사이, We Go Up 때부터 또랑또랑하던 마크를 좋아했었다. 가운데 서서 예쁘게 눈을 뜨던게 좋았다. 특히 Touch 무대가 예뻤는데 …..(잠시 무대 보고 옴)… 그 시절이 전생 같다. 요즈음도 얼굴이 말랐다 생각했는데, 그 때도 그랬구나…..











irregular 앨범도 꽤 좋아했는데, 그 때 지인이 싸인앨범을 받아다 주었었다. 계속 열심히 해서 더 멋지고 성장된 마크가 된다니 ㅠ ,,, 너무 마크 같아서 다시 봐도 어이가 없다,,,,, 마크야 누나는 아직도 여지껏 있었단다. 언제나 홧팅하진 못했지만, 행복하긴 해볼라고,,, 그래서 술도 끊고 블로그도 해,,,

그리고는 마크를 계속 좋아하고 예뻐하면서 나도 나이 먹고, 마크도 나이먹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마크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구나, 좀 표현이 이상하지만, 마음이 항상 다른 곳 어디선가 헤매고 있구나 은은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달라진 듯 눈이 맑아지면서, 다시 한 번 저 멀리 대기권에 가버린 듯한 그런 느낌. 곧 닳아버릴 위태로운 솜사탕 같은 실에 매달려서는 유유히 하늘을 둥실대는 풍선을 보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속쓰렸던 건 마크가 항상 틈만나면 아픈 걸 들켰다는 것;; “성장된 마크”가 되는게 너무 고달팠던 걸까 삐그덕에 실린 댐핑만큼이나 여기저기 기름때가 끼인 듯해 보기에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걸 점점능숙하게 숨길 필요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그대로 살아내는 것도 보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마크를 보내주는 주간에 이전 영상들을 돌려보면서 왜인지 캡쳐해 둔 것들…. 어려워도 하고 싶은 걸 하고, 동생들의 밥을 사주고 싶다던 고딩 마크, 떠나는 것보다도 너무 지치고 낡은 채 떠나는 게 아닐까 안타까웠다면 누나의 오바일까여,,, ㅠㅠ ,,,,,








시즈니 친구들과 마크의 추모/이별/작별/환송 파티를 두 차례나 열었다. 꼴보기 싫은 마음, 보내니 좋은 마음, 어이없는 마음, 건수 잡았다는 양 신나게 먹고 떠드는 내가 어이없는 마음 등등 살다살다 이런 파티도 처음이었다. 두 번째 파티는 NCT가 다녔다는 광진구 아따통닭에서 했는데, 시즈니 언니들 정모되는거 아니냐는 우려와 다르게 걸쭉한 로컬 아저씨들과 우리, 단 두 테이블과 조촐한 시간이 되었다. 그 누가 떠난들, 연예인 때문에 두 번이나 급거 모일 일이 앞으로도 있을까,, 희한한 날이었다.









지금은 그 때 홧김에 샀던 마크 뭐시기 굿즈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때인데, 갑자기 정리하는 척 글 쓰는 것도 어이가 없다.
그리고 당시 사진은 찾을 수 없었지만,, Glitch Mode 때 포스터, 문간방에 붙여놓고 출근할 때마다 힘을 많이 받았다. 요란하고 현란해서, 하루의 시작, 헛헛한 마음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좋았다. 돌아와서도 그랬다. 때려부술 듯한 형광빛의 아이들이, 번뜩 눈을 뜨이게 했다. 아래 앨범커버의 포스터 버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은 모습과 살아지는 모습이 다르기에 너에게도 니가 살고 싶은 모습이 있는 거겠지? 점점 더 뜸해지던 막바지 버블들 속 유난히 예쁘다 싶었던 사진들 마지막으로 남겨본다. “다 괜찮아 마크야, 잘 살아”라고 여러 번 말해주고 싶었는데, 어쩌면 내가 나한테 하고 싶어서 남한테 자꾸 말하나 싶기도 하다. 누나가 그러든 말든 마크야, 진짜 다 괜찮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잘 살아라!


